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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책]중국식 룰렛, 은희경 본문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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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책]중국식 룰렛, 은희경

쭌블라썸 2017. 7. 6. 02:01

K의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간단했다.
"결혼식."
그러고는 잔을 들어 술을 마셨다. 씽글몰트 위스키는 입은에 머금자마자 향기를 내뿜으며 온몸으로 우아하게 퍼져나갔다. 황홀할 정도였다. 이제 내 쪽에서 k에게 질문할 차례였다.
"당신 지금까지 겪은 일 중 가장 힘든 건 무엇이었습니까?"
"죽음을 받아들이는 것."
예상한 대답이었다.  K 역시 눈을 감고 술을 오랫동안 음미하더니 다시 내게 물었다.
"당신이 평생 가장 후회하는 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?"
"당신을 알게 된 것."
나는 되도록 단호하게 대꾸했고, 술을 마시고 나서 질문을 이어갔다.
"당신이 지금까지 했던 일 중에 가장 힘든 게 있었다면 무엇입이까?"
"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."
내가 기대한 것은 '사랑했던 사람을 잊은 일'이었지만 역시 k는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다.
다시 한잔. K가 질문할 차례였다.
"당신은 남에게 밝힐 수 없는 사랑을 한 적이 있습니까?"
"네버. 없습니다."
K가 노려보는 걸 모르는 척 나는 눈을 내리깔고 천천히 술잔을 비웠다. 이제 k는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는지 질문하고 싶을 것이다.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대답하기에 따라 k와 나의 게임이 끝나버릴 수도 있다. 만약 내가 거짓말을 했다고 대답하면 그 댓가로 나는 게임에서 제외돼버린다. 반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하면 또 한 번 상처를 자처하는 셈이다. 둘 다 k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. 그렇기 따문에 진실성에 대한 질문은 나중으로 아껴둘 게 틀림없다.

 

중국식 룰렛, 은희경